1. 발사체의 시초
발사체의 시초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처음으로 발사체를 발명한 나라는 중국입니다. 문헌에 따르면 중국은 비화창(飛火槍)이라는 불을 뿜으며 날아가는 창을 전쟁에 사용했다고 합니다. 창의 앞부분에 화약을 넣은 통을 설치하고 통속의 화약을 태우면, 화약이 타면서 연소가스를 뒤로 분출하고, 그 반작용으로 앞으로 날아가는 원리입니다. 몽고의 세계 정벌로 유럽과 주변국에 퍼져지면서 로켓 무기들은 다른 주변 국가에서도 사용하게 됩니다.
2. 우리나라 발사체의 역사
우리나라는 고려 말 최무선에 의해서 주화(走火)라는 화약 무기가 개발되었습니다. ‘달리는 불’이라는 뜻의 주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로켓으로 지금의 로켓과 같은 구조와 동작 원리를 갖추고 있습니다. 주화는 이후 조선 시대로 넘어가면서 신기전(神機箭)이라고 하는 로켓 무기로 발전됩니다. 신기전은 크기와 모양에 따라서 여러 종류로 나눠집니다. 크기에 따라서 대신기전과 소신기전, 중신기전으로 나눌 수 있으며, 대신기전에는 산화신기전이라는 변형된 형태가 있습니다. 산화신기전은 대신기전과 비슷한 제원이나 발화통을 2단 로켓형으로 변형하였다는 점에서 우리 조상의 놀라운 지혜와 기술을 한 번 더 볼 수 있습니다.
3. 현대 발사체(로켓)의 발전에 공헌한 과학자들
중국의 화전 제조 기술은 세계 여러 나라로 전파되어, 나라마다 각자 연구하고 개발하여 독창적인 무기로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우주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발사체를 이용한 우주 탐사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ii) -
우주 탐사를 위한 발사체를 구상한 사람은 러시아의 로켓 과학자이자 우주 계획의 선구자인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Eduardovich Tsiolkovskii)입니다. 1903년 최초로 우주 발사체에 관한 개념이 실린, ‘반작용 모터를 이용한 우주 공간 탐험’이라는 논문을 발표했으며, 이 논문은 이론적으로 인간이 지구 밖으로 우주여행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시발점이 된 논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 논문에는 현대 우주 공학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방법을 이용한 실제적인 로켓의 제작은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교수인 로버트 허친스 고다드(Robert Hutchins Goddard)와 독일의 과학자들에게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 로버트 허친스 고다드(Robert Hutchins Goddard) -
고다드는 현대 로켓 개발의 아버지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과학자입니다. 1926년 세계 최초로 액체 로켓을 쏘아 올리는데 성공하면서 우주 시대를 여는 중요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에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으나, 사후에 그의 업적이 재평가되어 현대 로켓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
미국에 고다드가 있다면 독일에는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박사가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준비가 한창이던 독일의 히틀러는 폰 브라운에게 로켓을 개발하도록 지원하고, 페에데문데 로켓 연구기지를 세워주었습니다. 그 결과 A-1, A-2, A-3, A-5 로켓과 함께 최종적으로 V-2 로켓이 완성되었고, 1944년에는 이를 영국 공격용으로 실용화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미사일의 기본적인 디자인을 고안한 사람이 바로 폰 브라운입니다. 폰 브라운 박사는 2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합니다. V-2 로켓의 부품과 이를 개발하였던 많은 과학자들은 미국으로, 실무진들과 기술자들은 소련으로 가게 되면서, 훗날 미국과 소련의 본격적인 우주 대결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폰 브라운은 1958년 창설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마셜 우주 비행 센터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미국의 로켓 기술을 최고로 끌어올렸습니다. 미국 NASA의 초기 우주 계획은 거의 모두 폰 브라운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대단한 업적은 인간을 달로 보내기 위한 아폴로 계획인데, 1969년 유인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발사체인 새턴 5호(새턴 V)를 만들어 우주 탐사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 -
우주 탐험 경쟁의 초기에는 소련이 미국보다 먼저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Sputnik)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한 발자국 앞서 나가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소련이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이면에는 세르게이 코롤료프(Sergei Korolev) 라고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소련 로켓 개발의 수석 책임자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미국의 폰 브라운과 함께 미소 우주 개발 경쟁의 중심인물이었지만, 당시 냉전 체제의 국제적인 정서와 소련 당국의 폐쇄적인 방침에 의해서 죽을 때까지 그의 존재는 베일에 가려졌습니다. 그의 사후 소련의 우주 개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인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971년 레닌 훈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